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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계공 승희 어록비(大溪公承熙語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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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계공 승희 어록비
 


<30世·諱-승희(承熙)·字-계도(啓道)·號-大溪=寒溪·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1847-1916>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번지 독립기념관뒤편 語錄碑公園

爲父母立身爲天地立心爲吾生立道爲斯民立極爲萬世立範
위부모입신위천지입심위오생입도위사민입극위만세입범
부모를 위해입신하고,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나의 삶을 위해 도를 세우고, 이 백성을 위해 표를 세우며, 만세를 위하여 본을 세워라.

1. 국내에서 주권회복운동(1895-1908)

  • 1905년 위정척사운동과 배일 언론 투쟁 전개
  • 배일 투쟁으로 왜경에 피체되어, 대구 감옥에 투옥되어서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다.
  • 1907년 국채보상운동 전개하다.
    경북 성주 지회장과 경남지회장에 피선, 국채보상 단연운동과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다.

2. 국외에서의 독립운동(1908-1916)

  • 1908년 4월 환갑을 넘긴데도 뒷일은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등 문인들에게 부탁하고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 거기서 안중근, 류인석, 이상설, 김학만 제씨를 만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 1909년 독립기지인 한흥동을 건설하다.
    소만 국경지역인 길림성 홍개호변 밀산부 봉밀산 밑에 황무지를 매입 개간하여 한인 유랑인 100여가구를 이주시키고 학교를 세워 “한민학교”라 명명하고 교민 교화에 힘쓰다. 그 후 한흥동은 독립군 기지가 되었다.
  • 1914년 요동지역인 안동현 덕흥보에 토지 280일경을 매입하여 교민을 이주시키며 이와 병행하여 동삼동 공교회를 창립하다. 이는 공교회 운동을 통하여 독립운동 기지건설을 목표로 한 것이다.
  • 중국 조야에 배일과 대한독립을 역설하다.
    1914년 중국 북경에 도착하여 원세계에게 서신을 보내고 청말 대학자 강유위, 용택후, 이문치, 설정청 제씨등과 교유하며 대한독립과 배일운동에 적극 가담할 것을 역설하며 호응을 얻다.

3. 1916년 2월 28일 최후의 망명지인 심양 일승잔에서 사자 기원, 차자 기인 형제와 한인 중국인 제자에게 “나는 나라가 광복되어야 고국으로 돌아 갈 것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70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일생을 마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다.

4. 선생의 사자(嗣子) 삼주 이기원(三洲 李基元 1855-1892)은 부공의 망명 지인 블라디보스톡을 왕래하며 독립자금과 기타 뒷바라지를 하는데 힘쓰다. 1926년에는 이른바 유림단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감옥에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다. 정부는 1991년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수여하다. 선생의 차자 백계 이기인(白溪 李基仁 1894-1981)은 부공의 망명지이며 독립운동기지인 한흥동 덕흥보 심양에 배종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도운 공로로 정부는 1990년에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수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