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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사자인(玉獅子印)
현조관련자료 > 문중 문화재·지정물 사진(文化財·指定物) > 옥사자인(玉獅子印)            
북비고택 만귀정 극와고택 하회댁 한주종택
진사댁 교리댁 월곡댁 삼봉서당 양전마을 세거장비
대계공 승희 어록비
 

한주집(寒洲集)의 옥사자설(玉獅子說)에 의하면 선조조(宣祖朝) 명신(名臣) 동강 김우옹(東岡金宇?)의 손자(孫子) 사월당 김욱(沙月堂金頊)이 옥(玉)과 같은 인품(人品)을 가지고 있다 하여 선조조(宣祖朝) 명신(名臣) 지봉 이수광(芝峯李?光)의 증손(曾孫) 유재 이현석(游齋李玄錫)이 김욱에게 옥사자(玉獅子)를 기증(寄贈)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욱의 종손(宗孫) 김창숙(金昌淑)의 심산유고(心山遺稿)에 의하면 이현석의 조부(祖父)요, 지봉(芝峯)의 아들인 인조(仁祖) 영의정(領議政) 분사 이성구(分沙李聖求)와 김욱은 동년배(同年輩)이고 또 같이 인조조(仁祖朝)에 입조(立朝)하였으므로 이성구가 김욱에게 기증(寄贈)한 것으로 보아야하며, 김욱과 이현석은 연령(年齡)의 차이가 심하여 이현석의 기증(寄贈)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여하튼 이 옥사자는 동강(東岡)의 종가(宗家)에 백(百)여년 동안 전해오다가 동강의 외손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 주자(朱子)가 외손에게 사자(獅子)를 그 려준 고사(古事)에 의하여 옥사자(玉獅子)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자 동강 종가(宗家)에서 허락함으로서 옥사자는 한주의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한주는 옥사자에다가 ?조운헌도-祖雲憲陶?라는 네 글자를 새겨 인장(印章)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운곡(雲谷-朱子)을 조술(祖述)하고 도산(陶山-李滉)을 헌장(憲章)한다는 뜻이었다. 한주는 주자(朱子), 퇴계(退溪), 동강(東岡)의 연원(淵源)을 계승하여 주리사상(主理思想)을 제창하였다. 따라서 이 옥사자는 주리사상의 도통(道統)을 상징하는 인장으로 유명하였다. 한주문인(寒洲門人) 이재 송호언(履齋宋鎬彦)은 옥사자가(玉獅子歌)를 지어 도학연원(道學淵源)의 심원(深遠)함을 노래하였다.